사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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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바람에 남아있던 많지 않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서글픈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둑 어둑한 차창 풍경에 아직도 새벽인 줄 알았는데 시간은 어느새 아침 9시를 넘고 있었다. 사람들 모습조차 한가한 거리엔 이름모를 새 한마리만이 애써 젖은 날개를 움직이며 서둘러 나무 위로 날아가 앉았다. 휴일이 주는 넉넉함 때문이었을까 그리 많은 잠을 자지는 않았는데 숙면을 했던지 몸이 무척 가볍다. 두 손을 위로 들어 올리고 "아~웅" 기지개를 한껏 켜보았다.
 
냉장고에 넣어 두면 딱딱하게 굳어 버릴까봐 식탁 위에 그냥 놓아 두었던 김밥을 입에 물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마치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처럼 밥 알 하나 하나 모래처럼 서걱 거렸다. 달리 밥을 해서 먹고 싶은 마음도 없던 차라 치아 운동하는거라 스스로 위로하며 꼭 꼭 씹어 삼켰다. 
 
일 주일내 쌓아 두었던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세탁실로 갔다. 주섬 주섬 색깔별로 빨래를 구분하여 어두운색 먼저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그리곤 작은 손가방을 하나 옆구리에 끼고 세탁실 옆으로 난 문을 따라 차고로 들어갔다.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매고, 하나 급할 것 없는 모습으로 후진을 하여 거리고 나섰다. 스피커에선 Duke Jordan Trio의 Flight to Denmark 앨범의 "If I did - Would you"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무성하던 사방의 나무들은 계절의 부름에 순응하듯 한껏 가벼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위로 무심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라도 듣는듯 살짝 살짝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은행 가는 일이 즐겁지는 않다. 이제 다시 월말이 다가와 온갖 공과금과 세금,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선 돈을 쓸 때와는 달리 꼭 은행으로가 통장에 잔고를 높혀 놓아야 하니까 말이다. 또 하나 은행이, 특히 미국 은행이 맘에 들지 않는 이유는 달리 보면 느긋한 것이라 해도 좋겠지만 무엇 하나 서두르지 않는 은행원들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거나 말거나 자기 이야기 하던거 다 끝내고 느릿 느릿 창구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뭐든 빨리 빨리 해야 직성에 풀리는 국민성을 몸에 지닌 나로선 조금 답답해 지기 때문이다.
 
산책삼아 쇼핑몰에 갈까 하다 차를 돌려 USB Flash Drive를 하나 살까 하고Staples에 들렸다. 추수감사절도 다가와서 세일을 기대했었는데 아직은 시간이 아닌지 마땅한 것이 없었다. 뒤이어 Home Depot에도 들어갔지만 딱히 필요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제부턴가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마침 받아 두었던 요리 프로에 만드는 법이 나와있어 수퍼로 가 몇가지 요리 준비를 했다. 수퍼에선 조금 이르다 싶게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질까? 그래봐야 파와 양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맛 아이스크림을 산 것이 다지만.
 
애써 큰길을 밀어내고 좁고 작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차를 몰며 들려오는 따스한 재즈 선율에 손가락을 튕기고, 마치 모두가 떠나버린 것처럼 적막한 거리를 나혼자 달리고 있노라니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서 아쉬워졌다. 어디로 가자는 목적도 없이 그냥 길게 구불 구불 난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온통 머리 속엔 음악 만이 흐르고 있었고 시선 너머엔 나무와 낙엽, 그리고 차창에 비추어진 내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행복하다"라고 네 글자가 가슴 속에 불쑥 떠 올랐다. 물론 이 행복감을 함께 느낄 체온이 아스라하다는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산다는거 살아진다는거 어쩌면 손바닥 뒤집기 처럼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얼마든지 내 마음먹기에 따라 살아 질 수도 또 살아 갈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 선택은 오롯이 내게 달려 있고.

때론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늘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씨줄처럼 촘촘한 관계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리고 피할 수 없다면, 결국 그것을 즐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껄껄 웃어 넘기는 것이 내게 가장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말이다.
 
얼마전 "무한도전"이라는 오락프로그램에서 에어로빅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돌+아이"라는 캐릭터를 가진 노홍철이 벌칙삼아 다릴 찢기를 당할때, 그는 캐릭터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고통스러울 수록 소리내에 웃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이 고통스러워하며 얼굴을 찌푸릴 때 그의 얼굴은 꼭 간지럼이라도 당하는 양 웃고 있었던 것이다. 
 
별 대단할 것 없는 코메디의 한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고통엔 고통스러운대로 얼굴을 찌푸리고 또 화까지 벌컥 내버리는 나로서는 그의 미친 사람과도 비슷한 반응이 약간은 충격적이었고 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는 고통조차도 즐거움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것이 의도 되었든 아니든 내 삶에 적용 시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웃고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그 또한 웃어 버릴 수 있다면 삶은 웃음으로 가득찬 행복함으로 가득찰 수 있지 않을까?
 
빗발이 굵어 지고 바람이 더욱 세어 진다. 집앞 뜰에 심은 나무는 마치 부러지기라도 할 것 처럼 세차고 움직이고 있다. 또 저 길 건너보이는 국기게양대의 성조기는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제 겨우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인데 먹구름이 가득한 이 작은 거리엔
슬며시 어두움이 몰려 와 앉아 있다.
 
그나저나 Gutter청소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뒷 정원에 가득한 낙엽은 언제 다 모아 태워야 하는데 이렇게 비가 오니.. 이걸 언제한다??
쩝~ 언제 하지?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4
상상누리 2008.11.25 20:57  
하아~~ 떠도는 섬님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글도 자유롭고요 그런데..젖은 낙엽은 어찌하셨나요~^^
떠도는섬 2008.11.26 05:56  
젖은 낙엽..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내일 모레가 추수감사절이니까 그때나 긁어 모아서 태워야겠네요. :-)
파아란 2008.12.05 23:59  
닉네임만 들어도 넘 자유로와 지는거 같아요. 떠돌아 다니다 머물러서 섬을 이루다? 사시는것도 맘이 내키는대로.. 잘보았어요
컴퓨터사랑 2009.05.08 13:17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떠도는 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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