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민주주의는 독재에 패한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문득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여러 명의 대학생들이 손에 피켓을 들고 손님들에게 무슨 홍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손님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살펴보니 대통령을 성토하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과 전단지에는 “학자금 취업후상환제반대”, “X X X”등 대통령의 인격까지 야비한 표현으로 비난하는 글들이 쓰여 있었다.
목구멍에서 욕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대선 때 지지했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누려 본 나의 민주시민의 권리가 모욕 받은 것 같아서다.
북한이라는 독재체제하에서 수십 년간 살면서 꿈도 꾸지 못한 민주적 권리를 행사해 본다는 것은 탈북자에게 있어 호기심을 넘어서는 행복이었다. 때문에 대통령의 정책이 어떻고 하는 것에 앞서 애착심이 먼저 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왕초보의 모양새라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대통령을 비난하고 지나친 인격모욕까지 하는 현상을 목격한 것은 결코 이번뿐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다.
민주사회에 비판이 있게 되고 꼭 필요하다는 정도는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일부 남한사람들의 행동들을 보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며 모욕이다.
잘 낫건 못 낫건 일단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한다. 불법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경우도 아니고 민주선거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이라면 그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이 얼마나 국정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나라망신, 국민망신이 아닐까. 비판보다는 아예 대통령의 기를 꺽는 모습이다.
대통령을 욕하는 일이면 언론도 이성을 잃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 아마도 시청료나 독자수가 오르는지는 모르겠다.
북한에서는 충성경쟁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많기도 하더니 남한에서는 비난경쟁 때문에 국력이 소모되고 국가 이미지가 흐려진다.
모두가 자기 좋은 생각만 하는 것 같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있어야 하는 것이 민주사회임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 하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 또한 민주사회임은 망각하고 행동한다.
북한사람들이 전체주의로 인해 개개인의 개성과 이익을 피해 받더니 남한사람들은 일부 개개인의 성숙되지 못한 의식 때문에 집단과 국민, 국가가 피해를 입는다.
지하철에서의 대학생들의 행동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 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찡그린 얼굴로 애써 외면하는 아줌마에게 억지로 전단지를 쥐여 주려다 면박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오히려 더 높은 소리로 대통령을 욕한다. 한 청년이 책을 보고 있는데 그에게 다가가 또 뭐라고 하자 “난 관심 없어요.”하는 퉁명스러운 대답,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걸고 들 듯 “학자금이 충분한가 보죠.” 한다.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니 더 그러는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한 청년이 읽던 책을 탁 덮고 “난 이명박 좋아해요.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고 쏘아 붙인다. 그쯤하면 남이 싫다는 노릇은 그만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뭐가 어떻게 좋은 데요?”하고 싸움이라도 걸 기세다. 청년이 벌떡 일어서자 일이 시끄러워 질 것 같은 지 대학생들은 다음 칸으로 넘어 갔다.
이쯤 되면 대학생들의 활동취지는 어떻든 그 보다는 도덕성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간부들이 노동당의 정책학습을 잘하지 못한 노인을 따지고 들며 상처를 주는 행위와 무엇이 다를까.
“비판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 “밥그릇 싸움” 이런 말은 남한에 와서 처음 알았다.
일부 탈북자들마저 이제는 이런 것을 따라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착하는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언젠가 어느 유명 교수의 역사 강의를 들은 일이 있다. 그때 교수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고금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에서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이 실증 되었다. 그러나 항상 민주주의가 승리했던 것은 아니다. 역사는 민주주의가 타락할 때 오히려 독재에 패했다는 교훈도 가르쳐 준다.”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아니 할 말로 지금 남북관계를 살펴보면 더 그렇다.
아무 면으로 보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남한이 대북정책에서 시원스러운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북쪽에서 때로는 눈을 부릅뜨고 때로는 삵의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오래 묵은 세계최악의 독재가 넌지시 남쪽을 주시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