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은 왜 생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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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9 01:44
정착 5년차
혈혈단신의 몸으로 그것도 40대에 이땅을 밟았다.
비록 늦은 꿈이나마 이루어보려고 컴퓨터를 배워 남들이 어려워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십통의 이력서와 면접끝에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였다.
중국에서 언어때문에 고생한 생각을 해서 무작정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에도 입학하였다.
사무일을해본 사람은 알지만 자신이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 자리를 내놔야하고 또한 모든 행동 행동은 상사나 현장 사람들의 눈안에 있어 마음대로 화를 내거나 싸울수도 없는 것이였다.
그렇다고 누가 가르쳐주거나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다.
처음 1년-2년이 너무 힘들어서 수술까지 받게 되였고 대학공부는 왜 그리어려운지 6과목중 4과목 과락으로 포기하려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무엇을 깊이 생각하기보다 무작정 시작한 공부는 잘한것 같다.
다행히 대학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시험에 쫓기여 공부하지만은 그곳에서 나는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꾸었고 자신감도 가지게 되였다.
수술후유중으로 회사를 정리(그때는 병으로 몇달을 쉬고 다시 일할수있다는것을 몰랐다. 윗분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도 어차피 몇달을 비우면 빈자리는 어찌하나 싶어서 사표를 내였다.) 하고 다시일자리를 찾으려니 쉽지가않았다. 그때 정말 대학을 그만두고 돈이나 많이 벌수 있는곳으로 가서 일하고 싶었다.
당장 내 자신이 살아갈일이 막막했고 꿈에도 나를 도와줄수 있는 은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더욱 참기 힘든것은 외로움이였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그자체는 외로움과 고독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칭구도 만나기 힘들고 오직 시간이날때마다 책 책 책과 씨름을 해야 했다.
그래도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하늘이도와서 그런지 큰회사의 비정규직이지만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였다.
회사입사할때 이력을 간단히 꾸며서 이북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왜냐면 득이되지 않는다는것을 몸으로 체득하였깄때문이였다.
회사일을하면서 쌓인 노하우도 있고 자신감이 있기때문에 굳이 밝혀서 불필요한 대화나 자극으로 편견을 가지게 하고 싶지않았깄때문이였다.
완벽한 서울말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연습한탓에 별 무리없이 정말 편하게 회사일을 한것같다.
가끔 튀여나오는 이북말투에 놀라긴하지만 저의 부모님이 다 이북사람이라고 하면 별 의심을안하는것 같았다. 정규생들은 아마 회사에서 한자시험도 치르는듯 공부하는것이 힘들어보이는데 그때 나는 이미 한자 1급을 취득하고 사범에 도전중있었다. 내가 보고있는 사범문제지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였다.
현장중국인들과의 통역도 해주고 거짓말없이 회사에서 인기짱이였다.
힘들게 공부해서그런지 비록 방송통신대학졸업증이지만 나에게 너무나 귀하고 소중했다.
회사가 이전을 하게 되여서 과감히 사표를 내고 학습지교사에 도전해보리라고 결심하였다.
여러곳을 알아보던중 *****교사를 지원하게 되였는데 1차 면접에서도 당연히 이북인 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제가 지금 다른 여러곳을 알아보고있는 중이라고 하자 면접보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꼭 *****을 지원해달라고 하시길래 2차면접이 거의 20일이나 기다려야하는 27일에 있음에도 다른데를 지원하지않고 꼬박 기다렸다.
어제 면접날이여서 면접을 보는데 아무일없이 질문을 이어가던 그분이 갑자기 자기소개서를 보더니 부모님들이 의사.교사이면은 공부하라는 압박이 컸을텐데. 학력이 왜 이정도냐는 뜻으로 물어보는 것이였다.
그래서 이북이야기를 꺼내지않을수가 없어서 솔직히 말씀드리였더니 진짜 진지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는것이였다. 부모와 가족이야기를꺼내니 그동안 가슴에 묻고 혼자 그리워하고 아파했던 슬픔이몰려오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도는 것이였다. 긍금중이 가신듯 냉정하고 돌아온 면접관이하는 말씀이.....
새터민은 처음이라...아무래도 여기는 수도권이고 말투도그렇고 일하기는 힘들것 같다고 그러신다.
일을 둘째치더라도 내 마음의아픔을 희롱당한 기분이여 화가치밀었다.
그러시면서 묻는말 : 여기서 사시면서 편견 같은건 없으셨어요?
당근 나의 대답 : 편견은 내가 이북사람이라는것을 안 그 순간부터 생겨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부모가 그립고 형제가 그리워서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인테넷과 모든 정보와자료를 모은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일하기에 적합하지않다는 결론도 내렸다.
내일이 있어 오늘의 꿈을 포기하지않는다. 편견이 사라질때까지^^
혈혈단신의 몸으로 그것도 40대에 이땅을 밟았다.
비록 늦은 꿈이나마 이루어보려고 컴퓨터를 배워 남들이 어려워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십통의 이력서와 면접끝에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였다.
중국에서 언어때문에 고생한 생각을 해서 무작정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에도 입학하였다.
사무일을해본 사람은 알지만 자신이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 자리를 내놔야하고 또한 모든 행동 행동은 상사나 현장 사람들의 눈안에 있어 마음대로 화를 내거나 싸울수도 없는 것이였다.
그렇다고 누가 가르쳐주거나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다.
처음 1년-2년이 너무 힘들어서 수술까지 받게 되였고 대학공부는 왜 그리어려운지 6과목중 4과목 과락으로 포기하려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무엇을 깊이 생각하기보다 무작정 시작한 공부는 잘한것 같다.
다행히 대학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시험에 쫓기여 공부하지만은 그곳에서 나는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꾸었고 자신감도 가지게 되였다.
수술후유중으로 회사를 정리(그때는 병으로 몇달을 쉬고 다시 일할수있다는것을 몰랐다. 윗분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도 어차피 몇달을 비우면 빈자리는 어찌하나 싶어서 사표를 내였다.) 하고 다시일자리를 찾으려니 쉽지가않았다. 그때 정말 대학을 그만두고 돈이나 많이 벌수 있는곳으로 가서 일하고 싶었다.
당장 내 자신이 살아갈일이 막막했고 꿈에도 나를 도와줄수 있는 은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더욱 참기 힘든것은 외로움이였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그자체는 외로움과 고독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칭구도 만나기 힘들고 오직 시간이날때마다 책 책 책과 씨름을 해야 했다.
그래도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하늘이도와서 그런지 큰회사의 비정규직이지만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였다.
회사입사할때 이력을 간단히 꾸며서 이북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왜냐면 득이되지 않는다는것을 몸으로 체득하였깄때문이였다.
회사일을하면서 쌓인 노하우도 있고 자신감이 있기때문에 굳이 밝혀서 불필요한 대화나 자극으로 편견을 가지게 하고 싶지않았깄때문이였다.
완벽한 서울말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연습한탓에 별 무리없이 정말 편하게 회사일을 한것같다.
가끔 튀여나오는 이북말투에 놀라긴하지만 저의 부모님이 다 이북사람이라고 하면 별 의심을안하는것 같았다. 정규생들은 아마 회사에서 한자시험도 치르는듯 공부하는것이 힘들어보이는데 그때 나는 이미 한자 1급을 취득하고 사범에 도전중있었다. 내가 보고있는 사범문제지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였다.
현장중국인들과의 통역도 해주고 거짓말없이 회사에서 인기짱이였다.
힘들게 공부해서그런지 비록 방송통신대학졸업증이지만 나에게 너무나 귀하고 소중했다.
회사가 이전을 하게 되여서 과감히 사표를 내고 학습지교사에 도전해보리라고 결심하였다.
여러곳을 알아보던중 *****교사를 지원하게 되였는데 1차 면접에서도 당연히 이북인 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제가 지금 다른 여러곳을 알아보고있는 중이라고 하자 면접보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꼭 *****을 지원해달라고 하시길래 2차면접이 거의 20일이나 기다려야하는 27일에 있음에도 다른데를 지원하지않고 꼬박 기다렸다.
어제 면접날이여서 면접을 보는데 아무일없이 질문을 이어가던 그분이 갑자기 자기소개서를 보더니 부모님들이 의사.교사이면은 공부하라는 압박이 컸을텐데. 학력이 왜 이정도냐는 뜻으로 물어보는 것이였다.
그래서 이북이야기를 꺼내지않을수가 없어서 솔직히 말씀드리였더니 진짜 진지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는것이였다. 부모와 가족이야기를꺼내니 그동안 가슴에 묻고 혼자 그리워하고 아파했던 슬픔이몰려오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도는 것이였다. 긍금중이 가신듯 냉정하고 돌아온 면접관이하는 말씀이.....
새터민은 처음이라...아무래도 여기는 수도권이고 말투도그렇고 일하기는 힘들것 같다고 그러신다.
일을 둘째치더라도 내 마음의아픔을 희롱당한 기분이여 화가치밀었다.
그러시면서 묻는말 : 여기서 사시면서 편견 같은건 없으셨어요?
당근 나의 대답 : 편견은 내가 이북사람이라는것을 안 그 순간부터 생겨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부모가 그립고 형제가 그리워서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인테넷과 모든 정보와자료를 모은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일하기에 적합하지않다는 결론도 내렸다.
내일이 있어 오늘의 꿈을 포기하지않는다. 편견이 사라질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