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

무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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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나는 친구 숙이와 함께 탈북자의 남한사회에서 삶의 애환을 그려낸 독립영화 무산일기를 보았다.

말로만 듣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들의 처해진 현실과 관련 있다 보니 영화관람 내내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미리 이 영화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과 함께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진취적인 예술적 재능을 선보인 작품에 수여되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까지 2관왕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은 <무산일기>는 이후 모로코의 마라케쉬 국제영화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연달아 대상을 수상하며 '2의 똥파리'로 화제를 모았다고, 또한 얼마 전 열린 도빌아시안 영화제에서 또 한 번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며 단연 2011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작품으로 떠올랐다고 하길 래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갔지만 80석 되는 영화관에는 우리 일행들과 다른 관객들 두명 전부 5명이였다.

이렇게 해외에서 예술성이 높다고 극찬한 영화임에도 독립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영 썰렁하기만 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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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일기는 오늘날 남한 땅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탈북자의 애환을 장면마다 생생히,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어가며 어렵게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 땅으로 왔지만 무한경쟁체제아래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어려움들 속에 고민하고 좌절하는 탈북민 들의 모습을 예리한 시선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한사람들에게 탈북자의 이미지는 일정 부분들(부정적인 면들만 강조됨)만 각인되어 있어서 적응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어려움(탈북민의 처지와 현실에 카메라의 초점을 깊이 맞추고)들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라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주인공 전승철은 함북 무산이 고향인 젊은 탈북민이다. 고향에서의 고달픈 삶을 포기한 채 자유를 찾아 떠나온 그는 마음이 착하고 고지식하지만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직설적인 성격으로 인해 남한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철거촌의 임시아파트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그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거리의 건물 벽들마다 홍보물을 붙이는 일을 하지만 그 구역의 깡패가 수시로 찾아내어 폭행하고, 노래방에서 시급 4천원을 받으며 열심히 일해보지만 그것조차도 오래가지 못하며, 새로운 일을 찾으려 해도 탈북민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심지어 예수의 사랑을 설파하는 교회에서도 그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극중 담당형사 박씨가 승철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주면서 절대로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안받아준다면서...

 

살아남아야 할 게 아니야?”

 

담당형사분이 하시는 말씀이야말로 메콩강의 물결에 휩쓸려 죽어가면서도, 황량한 고비사막에서 헤매고 헤매다 탈진해 죽어가면서도 남한행을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또 다른 우리들의 조국=자유민주주의사회이고 G20선진국가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양면성을 낱낱이 까발려준다.

이것이야말로 영화 "무산일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탈북자라면 당연히 주어지는 주민번호 125는 또 다른 차별로 다가와 사회 곳곳에서 심지어 제일 시급한 문제인

일자리를 구하는 곳에서조차 냉정하게 외면당한다.

 


영화 무산일기행복해지려고 탈출했는데 행복해지지 않는 부조리함을 다루고 있다.

영화 속 탈북민(주인공과 친구들)은 우리가 이런 대우(자본주의사회의 부적응자, 세금이나 축내는 잉여인간)를 받으려고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왔냐고 한탄한다. 사실 자본주의사회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더없이 화려하나 실체는 파내려 가면 갈수록 얼마나 비정하고 가혹한지에 대해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향에서, 그리고 새로운 조국=대한민국에서조차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그의 삶은 바로 <茂山일기>가 아니라 <無産일기>임을 관객들에게 온몸으로 절규하며 보여준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전승철은 자신의 삶을 그려낸 이 영화가 완성되고 이틀 뒤 이미 선고받았던

위암증상이 심해져서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완성된 자신의 영화를 보는 승철이의 모습이 어땟을까?

그래도 완성작을 지켜볼 수 있어서 마지막 가는 길이 더없이 편안했을 것 같기도 하다.

 

<무산일기> 기자시사회장에서 박정범 감독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북한에서 공개된다면 북한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이 기를 쓰고 두만강을 넘어 남한에 가봐야 별 볼일 없는 모습을 볼 것이니라고 말이다.

 

꼭 짚어서 말 못할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일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미 세상에 없는 고인이 되어버린 승철을 떠올리며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아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안타까운 생각에 저도 모르게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아남는 것,

어쩌면 북한에서 탈출한 것 못지않게 한국 땅에서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살아온 세월을 통하여 느끼게 되었다.

 

무산일기의 주인공 승철의 모습을 보면서 내 기억속에는 떠오르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바로 목숨을 건 남한행의 길에서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일행(8)중 한명의 모습이다.

북한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애들만 가는 김책공업대학”(남한으로 치면 KAIST)를 졸업한 재원인 A, 꿈에도 그리던 남한으로 입국하여 역시 못 다한 배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세대학교까지 졸업했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다. 우리 곁을 떠난지도 벌써 삼년이 되어온다.

무엇이, 과연 무엇이 남과 북의 최고 대학을 나온 그를 결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게끔 몰아갔을까?

나는 정말 다음 생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3
본문_작성자  2011.05.03 18:15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넘 가슴이 아프네요,,,
본문_작성자  2011.05.08 15:07  
좋은글을 읽고갑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고향에도 가보는것 또한 희망입니다.
세기  2011.06.13 17:18  
탈북자들이 다 이렇게 사는것이 아닌것으로 하여 이 영화는 남한사회에 되려 탈북자을 비하 하는 시선을 주게 만들었다. 이 감독 한국 실정 가지고는 정 돈벌이 할 파워가 못되니 탈북자들의 비참상을 꺼들어 가지고 동정이나 받아야 할 사람드로 인식주려고 하는데 우리 탈북자들 그렇게 구차하게 사는 사람 거의 없다. 생명을 담보로 찾은 이땅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혀서 능히 삶을 개척해 나가는데 왜 하필이면 고인에게는 안됬지민 이런 인생 패배자를 우리 삶의 전형 처럼 꾸미려 하는지 그 의도가 너무 철없는 수전노 이다. 저도 말한다지 북한에서 좋은 평을 들을수 있는 영화라고... 이런 수전노 같은 자들 때문에 탈북자들이 비하되고 있다. 고인에게는 미안하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것이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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