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답사후기

안보답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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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통일부에서 마련한 안보의식고취 및 답사에 참여할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느닷없이 찾아왔더랬습니다.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최전방 백마고지랑 제2땅굴, 승일교, 노동당 당사 등을 제 눈으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더랍니다.
 
저로써는 더불어 꿈에서조차 못잊는 북녘하늘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수 있는 시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광화문에 위치한 통일부 청사에서 모여서 두 대의 뻐스에 나누어 탄뒤 이동을 하였습니다.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경기도 포천을 지나 달리고 달린 뒤에 드디어 목적지인 철원에 도착하였지요.
숙소에 잠깐 모여서 통일부 정책사무관님의 인사말씀과 현 대북정책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마무리 되어갈 즈음 퀴즈를 내셨어요.
 
다름아닌 통일되며는 제일 좋은 세 가지가 무어냐? 라고 하시길래 다들 웅성웅성...
이런 저런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당시 한국이 월드컵 16강 진출을 앞두고 있었는지라
제일 호응이 높았던 대답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통일되며는 박지성 선수와 정대세 선수가 투톱으로 나란히 그라운드를 뛸 수 있다는것!!"

여기에 의문을 품거나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마치 통일을 눈앞에 두기라도 한것처럼 참여한 학생들 모두가 발그레 양볼이 상기되어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답니다.

아무튼 그렇게 일정은 무리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6.25의 처절함을 생생히 보여주는 그 시절의 흔적들인
총탄자국이 수두룩히 자리한 노동당 당사도 처연함속에 돌아보았고
한탄강 세찬 물살위로 자리한 승일교위도 걸어보면서 다음 장소인 필승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철원군 문화강사님께서 하여주시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서 끝없이 푸르기만 한
북녘하늘을 짧은 시간이나마 아주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에서 평강은 19키로밖에 안되었습니다.
19키로....
아무리 느린 걸음으로라도 하루면 얼마든지 가닿을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평강은 전연지대로써 일반인들의 접근조차 불가한 지역이랍니다.
저도 말로만 들어보았을뿐 실제 가본적도 없는 곳이지요.
 
함께 간 학생들은 "어머 저기가 북한이야? 근데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네, 땔감이 없나봐?"
이러면서 웃고 떠들었지만...전 차마 웃을래야 웃을수가 없었습니다.

일상에 쫓긴다는 핑계로 잊고 살아온 고향에서의 끔찍한 나날들,
지극히 평온하게 보여지는 저 푸른 하늘아래 펼쳐지고 있을,
살아 숨쉬는것만이 오로지 인생의 최대 목표인양 버둥거리는 북녘동포들의
처절한 몸부림들이 너무도 생생히 떠오름에 가슴 한구석이 미여지듯 아파옴을 느꼈습니다.
 
최전방이라 도저히 믿기지 않을만큼 지극히 평화롭고 고즈넉한 모습들,
이름모를 산새들이 저저마다 고운 목소리로 목청껏 노래부르고
빠져들고싶을 정도로 가없이 푸르른 하늘위로는
하얀 솜뭉치같은 뭉게구름이 모락 모락 피어나고 있는데...
순간 저는 온몸에 전율처럼 강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감지할수 있었습니다.
 
바로 저기 저 북녘하늘 아래가 아닌 삼팔선 이남에서 숨쉬며 살아간다는 현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다시금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감사함과 그럴수록 북녘동포들의 노예살이를
끝장내는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 겟다는 각오를 다져보았습니다.
 
그렇게 각자 나름대로의 느낌을 가슴에 소중히 안은채 전방에서의 저녘은 고요히 깊어갔습니다.
이튿날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16강에 당당히 진출했다는 기쁜 소식으로 아침을 맞이하면서
남은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드디어 말로만 들어보던 땅굴을 직접 가보게 되었습니다.
앳된 군인아저씨의 주의사항을 새겨 들은뒤 안전모를 착용하고 땅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키가 큰 학생들은 자칫 잘못하여 굴천정의 삐죽 튀어나온 모서리에 부딫혀 비틀거리기도 하고
여학생들은 발을 헛디뎌서 비명을 지르기도 하면서 계속 깊숙한 굴내부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군데 군데 굴 좌 우 쪽으로 폭발에 필요한 화약심지구멍을
뚫느라고 낸 자국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동그랗게 하얀 색으로 표시를 해뒀더랍니다.

굴속이라 그런지 시원하다못해 오싹한 바람이 가뜩이나 긴장된 우리들에게로 불어와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답니다.

그렇게 이십분정도 들어갔을까,
드디여 제법 트인 넓직한 공간이 나왔고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하시더군요.
강사님께서 지금 여기 바로 위가 철책선 몇십메터 못미친 구간이라 하시며
대한민국의 제일 끝까지 와있다고
하시길래 순식간에 저는 소름이 쫘악~~끼쳤답니다.

다시 북한으로 끌려간다면...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으니까요...
여기 이곳이 바로 북한군이 땅굴공사를 하면서 발전기를 들여놓았던 장소라고 설명을 하시길래
전 찬찬히 콘크리트 구조물을 살펴보았습니다.

근데 척 봐도 북한사람이라며는 누구나 알 수 있을만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니라 북한에서는 콘크리트가 굳어지기전까지의 일정한 시간을 위해서
양옆에 판자들을 덛대어놓군 합니다. 안그러면 줄줄 흘러내릴테니까요..
거기에는 바로 판자자국이 생생히 남아있었습니다.

혹 남한에서는 콘크리트구조물을 굳힐때 어떤 식으로 굳히는지요?
표면이 매끈매끈한가요? 아니면 북한처럼 판자들을 얼기설기 덧내어서 흔적이 남는지요?
 
처음 이 땅굴이 발견되었을때 북한에서는 남한의 자작극이라면서 아닌 보살에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치밀한 조사와 검증을 거친뒤에 세가지 사실에 의해 결국 북한의 짓임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세 가지중 첫번째는 바로 땅굴의 물이 북한쪽으로 흐른다는 점(북한이 아래쪽, 남한이 위쪽임)
두번째는 굴을 뚫어 올라오면서 남포심지를 박은 자국들이 남쪽을 향해 있다는 점
세번째는 북한과 남한의 서로 다른 공법으로 북한(발포공법)쪽은 벽면이 그을려있고
남한은 현대식 공법으로 벽면의 차이가 없다는 점

 
그야말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붉은 노을로 남조선을 뒤덮어버리겠다는
북한독재자들의 적화통일의 야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산 증거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굴속 곳곳에 남아있던 포성은 그쳤으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휴전일뿐 종전은 아님
각성시켜주는 의미심장한 문구들은 다시금 우리들의 흐트러진 자세들을 돌이켜 볼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긴장된 마음가짐과 자세로 철저히 준비하고 또 준비할때만이 그 어떤 도발에도 한치 흔들림없이
대처할수 있음을 다시금 깨우쳐준 의미로운 시간들이였습니다.
우리 회원님들 더운 여름 건강히 나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년 7월 14일 -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3
한맥  2012.07.02 23:03  
[혹 남한에서는 콘크리트구조물을 굳힐때 어떤 식으로 굳히는지요? 표면이 매끈매끈한가요? 아니면 북한처럼 판자들을 얼기설기 덧내어서 흔적이 남는지요?] 답변입니다. 한국서는 거푸집이라 하여 규격에 맞게 작은것에서 부터 큰것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거푸집은 목제, 금속제, 알루미늄 합금제, 합성수지등 다양하게 있습니다. http://cfile272.uf.daum.net/image/166FEF4B4F3720972BBAB8
파도소리  2012.07.04 14:22  
고향 하늘을 바라 볼 때 얼마나 가고 싶었습니까.그심정 충분히 이해 합니다.북한도 사회주의를 하더라도 민주 절차에 의한 통치체제로 바뀐다면 고향 가시는 길이 앞당겨 질건데요.
본문_작성자  2012.07.06 13:04  
좋은 경험 하고 오셔네요 예전 그곳에서 군생활 하고 있을시 북한 대남방송 많이 들었지요 북한 여자 이쁜 음성으로 월북 하라고 많이도 꼬셔던 곳입니다. 그래서 당시 월북한 전우도 실제 있어습니다. 좋은 경험 바탕으로 우리의 안보에 힘써 주시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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