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정착하는 우리 회원님들의 훌륭한 모델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우리 회원님들의 훌륭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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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수기] 나도 이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 김성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23살에 고향 떠나 두만강을 건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10년 전 급성세균성대장염 때문에 죽음의 문전을 두드리며 두만강을 넘었던 내가 이렇게 살아서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것도 꿈만 같을 뿐이다.

1975년 함경남도 함흥시 00구역 000동의 평범한 가정에서 1남2녀중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황철나무 우거지고 해바라기 만발한 학교에서 11년 고등교육을 받으며 꿈 많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나의 모든 꿈을 앗아갔고, 23살의 젊은 나의 발걸음은 고향이 아닌 중국으로 향하게 했다. 산 설고 물 설은 낯선 땅 중국에서의 고단했던 4년은 후일 한국에서의 생활에 귀중한 경험이 되였다.

나는 2001년 1월 김포공항으로 입국하여 모든 조사를 마친 후 하나원에서 3개월의 사회정착교육을 마치고 그해 6월에 서울시 강서구 00아파트에 아내와 함께 삶의 둥지를 꾸렸다.

첫 직장

우리 부부는 하나원 퇴소 10일 만에 각각 직장을 얻어 취직을 했다. 집사람은 00회집에, 나는 유일기기산업사라는 경찰장비전문제조업체에 취업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보게 되었다. 또 그들의 세금으로 나와 같은 젊은 사람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옆 건물 사장님께서 직접 찾아와 나에게 아내를 사원으로 받고 싶다고 청을 하기에 아내를 대신 GMD라는 유통회사 정식사원으로 취업시키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2001년 11월부터 급여의 50%를 지원해주는 통일부지원금을 받아 각각 140만원의 수입을 올리면서 월 50만 원짜리 근로자우대저축 3개를 들었다.

통장 한 개에 50만원씩 3년을 저축하면 3년 후 2천만 원을 받는 것이다. 연리로 따져보니 5.2% 였는데 이런 통장을 나와 집사람의 명의로 3개를 만들었다. 3년 후에 6천만 원을 만지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앞으로 저금리시대가 되면 연리 5.2%에 세금면제까지 받는 저축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고 우리 부부의 그 선택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고민

세금공제 후 월 260만원의 소득을 올리던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2년 동안 약정 지급 되던 급여의 50% 지원 통일부지원금이 2003년 11월자로 끊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10만원 인상된 150만원을 받는데 아내는 100만원으로 내려간 월급을 받게 되었다. 각종 보험과 물가 상승으로 지출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오히려 20만원 가까이 줄어들어 240만원을 오르내리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월 150만원 저축, 두 사람 보험 월 30만원을 쏟아 넣고나면 오히려 우리 정착금을 써야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동안 우리 부부가 받은 정착지원금 4400만원 (세대주:3600만원, 가족:800만원)으로 바쁜 데를 메우면서 살아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2004년 1월 나는 최종적으로 직장을 옮길 생각을 굳혔다. 5년간 1억 저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내가 월급을 더 받는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니던 지금 회사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2년여 근무하면서 수입검사 대리로 승진했고, 직장상사와 부하들과의 원만한 대인관계로 근무환경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도전을 선택했고 편안함을 단호히 버렸다. 많은 주변사람들이 나의 선택을 나무랐으며 나를 회사에 소개시켜주신 형사님은 자기의 의견을 무시했다고 다음직장은 "네가 알아서 잘 해보라며" 사실상 단교에 가까운 화를 내시며 이직을 결심한 나를 안타깝게 하였다.

취업과 돈벌이는 탈북보다 힘들었다. 나는 결심대로 유일기기산업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직장 취업에 나섰다.

사실 이때 나는 마음의 고생을 제일 맡이 했다. 집에서 쉬는 한 달간 집사람 보기도 부끄럽고 내가 괜히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취업의 벽은 예상을 뛰어넘어 냉혹하고 이러다 월 150만원은 고사하고 100만 원짜리 직장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에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가 않고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는 집사람이 오히려 나를 위안해 주는 게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과 2년간의 직장경력이면 웬만한 곳은 충분히 취업가능하다고 판단한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나 같은 탈북자가 넘기에는 한국 사회의 편견이 너무나 높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1백통이상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고 메일로 보내도 답장 한 장 없었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얼어 고민하던 끝에 특단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서 탈북자의 흔적을 없애고 순수 한국사람 경력으로 위조를 해서 보내기로 했다.

나의 방법은 적중했다. 즉시 여러 곳에서 답장이 오고 면접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한다. 진정한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하려면 남한 사람들과 북한사람들 간의 불신과 편견이 우선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곳에 오는 탈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취업에 실패하고 방황하며 이 사회에서 이단자처럼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마약과 강도, 도적질을 하는 비도덕적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가지고 전체 탈북자들을 매도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북한인민들은 반세기 이상 세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독재통치를 받으며 폐쇄된 사회에서 살았다. 물론 그 땅에도 사람은 살았으며 나의 조상과 부모형제들이 대대손손 살았다. 단지 사상과 이념, 문화와 가치관이 다를 뿐 똑 같은 한 민족이다. 그들에게는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

한국은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질문명을 누리며 정신적인 문화와 삶의 질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모르고 살았다. 아니 무관심속에 살았다. 그들에게 남에 대한 배려는 사치고 사랑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내면에는 감정이 넘치고 사랑이 샘솟는 대한민국의 똑 같은 사람들이며 우리의 형제자매들인 것이다. 그들에겐 편견이 아닌 진정한 사랑과 인정이 필요하며 용서와 너그러움이 그리울 뿐이다.

국민소득 2만 불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북한사람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세상 어느 민족이 저 북한인민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한국에 온지 3년이 넘어서도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혹시 모를 편견과 몰이해로 받게 될 불이익과 그로부터 받게 될 내 맘의 상처가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하면서 받은 탈북자에 대한 남한사회의 편견을 확신하게 되면서 허탈감까지 느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언젠가 실력으로 여기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때 탈북자라는 나의 신분을 떳떳이 밝히고 살겠다고 굳은 맹세를 했다.

나는 탈북자라는 나의 신분을 감추고 네덜란드 계 INALFA KOREA 라는 다국적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1차 면접을 통과하였다. 하지만 2차 면접에서 생산팀 팀장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끝내는 탈북자라는 신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탈북자라는 신분을 감춘 이유를 설명해보라는 팀장님에게 나는 내가 한국사회에서 겪었던, 그래서 내가 숨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2002년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던 6월 29일 북한의 도발로 일어난 서해교전이 발생한 후, 직장 동료들한테서 받았던 오해와 취업에 도전하면서 확인했던 편견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어느 회사나 수습기간이 있는데 그 기간동안 써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 스스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나의 말이 팀장님을 움직인 것 같다. 이후 나는 사장님과 임원들까지 3차례의 최종면접에서 통과 되였으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괌의 직장이라는 외국계 다국적 회사에 정식사원으로 채용되었다.

나는 40:1의 경쟁력을 뚫고 창사 10년간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인 연봉 2400만원에 생산팀으로 발령받아 2004년 3월 2일로 첫 출근을 하였다. 함께 입사한 4년제 대졸자들의 연봉 2100만원에 비교하면 실로 파격적이라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냈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했으며 상사가 원하는 요구 수준에 맞추기 위하여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였다. 300여명의 직원들 앞에서 내가 북한의 전체 인민들을 대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매사에 심중하게 모든 일들을 솔선수범하였다. 2004년 5월 KBS '남북의 창'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나는 직장이 경기도 화성에 소재하는 관계로 2004년 6월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하게 되였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서울의 임대아파트를 정부에 반환하고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18평 빌라에서 1년간 거주하다가 2005년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하였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청구1차 아파트 단지 내에 내 집에 뻐젓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 부부의 4년여 피타는 노력의 결실로 시가 1억 2천만 원짜리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부러운 것이 없다. 월 2백만 원의 출장비를 받아가며 해외 장기출장도 간다. 그 덕에 주말이면 동경, 오사카, 교토를 실컷 구경했고 국제적인 감각도 넓혔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언어와 행동, 생각까지 모든 것이 바꿔 지금 나는 탈북자라고 당당히 밝힌다. 놀랍게도 지금은 나를 전혀 탈북자로 여기질 않는다.

나는 지금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나마 직장생활을 많이 한 선배로서 꼭 후배 탈북자들에게 조언하라면 이렇게 당부하고 싶다.

첫째. 말(언어)을 바꿔라.
언어는 당신이 이 나라에서 당당해 질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둘째. 항상 웃고 매너를 지켜라.
밝은 웃음과 성숙한 매너는 당신을 당당하게 만들며, 뭇사람들이 당신을 깔보지 못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다.

셋째.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수풀처럼 자신을 낮추어라.
자기를 들어 낮추는 겸손은 남들이 당신을 들어 높이는 첫 번째 조건이다.

넷째. 매사에 심중하라.
자그마한 일에 쉽게 감정을 표출시키며 이깟 일 아니면 딴 회사 없겠냐는 식의 행동은 자신을 영원히 취업준비자로 만든다.

다섯째. 항상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라.
지금 이 시각에도 고향에서 굶주릴 나의 부모형제들을 생각하면 무엇인들 못 참겠는가! 참고로 나도 가장 분하고 억울하여 당장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었을 때 고향의 부모형제들을 생각했다. 나의 일당(5~10만원)이면 북한의 가족들의 한달 생계라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의 생각은 달라 질것이다.

나는 위에 지적 사항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리고 99%이상 지켜왔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떳떳이 말하고 있다. 나는 월급여의 l0%인 평균 25만원을 각종 세금 및 연금, 보험으로 나라에 납부하고 있다.

나는 월 40만원의 휘발유를 소모하며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또 각종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차량보유세 등 각종 세금을 이 나라에 납부하고 있다.

나는 말로만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전,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지키는 지극히 평범한 이 나라의 국민이 먼저 되었다. 그리고 납세의 보람을 느끼며 내 주위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또 도우려고 애쓰며 당당해졌다.(사실 어떤 때는 월급명세서에서 50만원이나 공제된 세금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2006년 10월 김성철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37
본문_작성자  2012.10.23 12:38  
홍콩 교민 입니다. 훌륭 하십니다.
정열의화신  2012.10.24 06:49  
물론 이런 사례는 처음에 정착금을 지금보다 많이 받을 때지만 어떤 탈북자들은 사업이요. 뭐요 하면서 다 날려버린 사람이 많더군요. 그런데 그걸 한푼도 안쓰고 저축을 했으니 생활력이 정말로 강합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3 15:14  
새터민들의 귀감이신듯~~이분의 신조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살아야 겠어요,,참으로 대단하고 훌륭한 분이십니다.
정열의화신  2012.10.24 06:50  
모두 따라배울만한 모델중에 모델입니다.
암양님도 잘 살게 될 날이 올것입니다.
애루화  2012.10.23 21:32  
직접 체험을 통해 얻은 금과옥조와 같은 조언들
정말 소중한 말씀입니다.
'정열의 화신'님은 충분히 대한민국 국민이 되실 자격이 있습니다.
정열의화신  2012.10.24 06:45  
저는 어디서나 우리 탈북자들의 성공소식이 전해지면 제일처럼 기뻐하는 사람들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저도 그런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송대관의 "해뜰날"을 즐겨부르고 있습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4 23:45  
좋은글 정말 잘보고 갑니다.~  앞으로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
본문_작성자  2012.10.25 09:33  
너무 감동적인 글이였습니다. 웬지 눈물나게 감동을 주는..이런 분이야말로 새터민들의 진정한 자랑입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5 17:55  
새터민들의  본보기 전형이라고 봅니다.

님과 저를  비교해 보니..내가 너무 민망스럽기만 합니다.

더큰  사업가로 발전하시길 바랍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5 23:59  
정말로 좋은 본보기가 되실만한 분이군요..
후배탈북자들을 위한 아낌없는 조언 또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진실이라 신뢰가 갑니다.
앞으로도 더더욱 멋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일신우일신하시길 바래봅니다.
바라미  2012.10.26 02:07  
참으로  귀감이  가는  좋은  본보기네요
모든  분들이  느끼고  실천해야하는  일입니다

님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총알  2012.10.26 22:31  

정말 대단합니다. 허나...위에서 지적하신 분들에 비하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분들도

너무나 많더군요. 2천4백만의 북한주민들을 끌어안는 심정으로 대한민국 정부도 2만4천명의 새터민들을

 더욱 넓게 포옹해 주는 새로운 시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같이 성한 사람들이야 아무거나

노가다라도 해서 살수있으련만...참 아직도 새터민들에 대해서 궁시럭 거리고만 있는 정부가 안쓰럽습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7 10:38  
정말 새터민들의 귀감입니다. 잘하셨고 앞으로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롤링스톤  2012.10.27 10:52  
새터민뿐 아니라 헌터민에게도 귀감이 될수있는 훌륭한분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 대단하시네요..
다만 이런글을 볼때면 느껴지는것이 모두가 귀감이 되고 훌륭한 삶을 살수있으면 참 좋은일이겠지만,
실제적으로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삶을 살고있는분들이 많다는거죠..
새터민, 헌터민 공히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공신화를 가슴 벅차게 이야기 하지만 그 이면에 소외된사람들의 삶도 한번쯤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7 23:50  
참으로 멋진 글이네요.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8 02:51  
탈북자들의 훌륭한 귀감이십니다.
성공이라기보다 자신만의 꾸준한 인내력과 자신감으로 승부한 탈북자의 진정한 모습, 그 자세에서 보여준것처럼 우리가 설자리, 내가 설자리는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우쳐주는 분이십니다.
본문_작성자  2012.10.28 14:06  
멋져부려~!!!
본문_작성자  2012.10.30 22:49  
님의 성공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럼요 용기를 버리지 않고 살면 성공이 옵니다
본문_작성자  2012.11.01 18:34  
감탄을 안할 수 없네요.
님의 아름다운 마음, 굳건한 의지,힘찬 도전......그리고 삶의 의지.
힘찬 박수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모든 새터민님들이 정열의 화신님처럼 꼭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본문_작성자  2012.11.02 19:26  
모든 새터민들이 글쓰신 님의 끈기와 열정,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터민의 한사람으로 써 존경합니다~
본문_작성자  2012.11.06 15:23  
참 대단하십니다.
전 북한기업 한성무역 회사원이지만 한국 기업에서 이렇게 도전하시는 분도 있구나 하고 생각을 새롭게 해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리 한성무역은 대표님으로부터 직원의 70%가 북한 이탈주민들로 되였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본문_작성자  2012.11.09 01:43  
똑똑하시네요
한국 정착한지 오래되서 그런지 글 표기도 잘 하시고
성격도 좋고 현명해 보입니다
그정도 마인드면 99.99%성공 확율입니다..
본문_작성자  2012.11.13 09:35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어떤 새터민들은 그정도 되면 금방 들어온 우리 사람들에게 량심에  꺼리는 일도 서슴없이 하던데요  새터민들의 귀감으로 사셨네요  정열의 화신님  진심으로 축하드리구요 앞으로도  후배들을 위해서 좋은 조언 부탁드리구요  행복하세요
본문_작성자  2012.11.15 09:59  
님의 정착기에 많이 감동되었습니다. 인내와 노력으로 마침내 큰산을 넘어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이..
앞으로 더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본문_작성자  2012.11.21 10:33  
안녕하세요?이 글을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저도 지금은 자그마한 공장하나 운영중인데 많은 도움이 되였습니다.대단하십니다. 앞으로 더 잘되시길 기원합니다.
본문_작성자  2012.11.22 21:22  
감동적이였어요.  꼭    저를  보시고  말한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 명언이예요 한마디  한마디가....
축하드립니다  성공을  ..  그리고  행복하시고....
본문_작성자  2012.11.24 21:09  
10년이면 연봉이 4000 은 돼야 ㅋㅋ
본문_작성자  2012.11.30 13:55  
넘 멋있어요!!!
본문_작성자  2012.12.07 16:36  
저두 고향이 함경남도 함흥시 인테 반갑네요. 잘 정착하셨네요~
본문_작성자  2012.12.11 15:17  
멋져요, 홧팅!
본문_작성자  2012.12.13 20:21  
넘 멋있고 훌륭한 글이네요 새터민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 정말 멋있어요 홧팅!
본문_작성자  2013.01.02 11:00  
훌륭하십니다. 우리모두의 귀감입니다. 저두 물류센터에서 2년째 일하고있습니다 고귀한 조언 가슴에 새길게용 감사합니다.
본문_작성자  2013.01.02 14:50  
정열의 화신님 님의 꾸준한 인내와 피타는 노력에 감사를 드리며 존경합니다. 한국정착과정에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기억하고 꼭 참고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좋은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본문_작성자  2013.01.23 21:33  
참 감동입니다.
후배들 정착에 큰 도움이 되는 글로써 앞으로도 더 좋은 글 기대할게요.
본문_작성자  2013.02.07 19:46  
사실 헌터민도 님처럼 하면 성공하고 님이 경고한것 처럼 하면 실패합니다....
본문_작성자  2013.03.12 15:46  
탈북하신 분들이 정착해서 성공한 이야기 들으니 기쁘네요
본문_작성자  2013.04.28 12:18  
이런걸 정착성공이라고 한다지요. 정말 피타는 노력의 결과라할수 잇네요..훌륭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공의 앞자에 서잇기를...하잇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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