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 경험 3

정착 경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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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 첫 해이자 넉달이 되오는 어느 날 목사님 방을 청소 하다가 대학입학 소개 서류 몇개가 있어 가져다 드렸더니 버리는거라면서 나에게 생활이 어느정도 되면 공부 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고 하면서 여기는 자격증 시대라 지금이 제일 좋은 때그러더군요.  
  누가 추천해 주냐고 물으니 여기는 본인이 한다면서 우선 이 서류 가지고 직접 보라고 하기에 잠간 시간을 받아 버스를 타고 찾아 갔습니다.
   대학 명판을 확인하고 교무행정실을 찾아 갔는데 마침 부 총장님이 그곳을 지나시다가 북한에서 온 탈북자인데 대학 공부를 하고 싶어 왔다고 하니 만나 주셨다.
   한시간 여만에 상담을 마치고 와서 얼마 후 입학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와 3월 1일 까지 (5개월 17일 동안 용역 회사에서) 일을 하고 3월 2일 부터는 09학번 대학생이 되었죠.
         (학생이 되자 입는 옷과 신발 부터) 몸가짐이 달라지더군요.
   어느날 첫 오렌테이션을 간다고 하는데 나는 오리와 뭔 모임 인가? 하고 생각 하면서도 어디다 물어 볼데도 없더군요. 아! 뭔 오리집 같은데 가는가보다. 했거든요.
   오렌테이션 갔다 와서 또 MT를 갈 때도 MP로 잘못 듣고 혼자 속으로 ( 아! 교도훈련 가는구나) 했었죠.
   그래서 조금 낯을 익힌 옆에 학생에게 MT 가면 총도 쏘냐고 물었었더니?
못 알아 듣더군요. 미안하게 설명을 듣고 나니 허허 웃기더군요. 참 ~~~
  사실 여기는 전수 영어를 쓰니 강의 중에도 알아 듣지 못하는 말들이 참 많았습니다.
  말이 대학생이지 학원도 안나오고, 컴퓨터 자격증도 없는 형편에 영어 원어민 강사님들이 수업을 하는 강의실에 처음 들어 갔을 때 앞이 진짜 캄캄 하더군요.
   여기서 하는 영어는 북한에서 배운 발음 하고 환익스가 아주 달랐고, 또 84년에 대학을 나온 후 25년간 별로 써보지 않은 영어 실력이란 눈으로 보고 답을 찾는 것 조차도 쉽지가 않았고 조별로 상의를 해서 한 사람이 몇줄 씩 맡아 읽고 문법에서 틀린곳을 찾는 것 이란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컴퓨터를 주민센터에서 배우면서, 아침 저녁 그리고 출근하면서는 영어를 끊임없이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중국에 좀 있다 보니 제2전공 중국어가 제일 쉽더라구요.
   이렇게 한국에서의 만학도 대학생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1년동안 컴퓨터 자격증 따고, 영어는 책을 거의 외우다 싶이 하여 토익 시험을 통과 하고나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8시 첫 시간이 영어 시간이었습니다. 9시 부터 기본 강의가 있으니 대학 자체로 진행 하는 즉 다시 말하면 예비강의인셈이죠.
   거의 절반 학생들이 이 수업을 안받아도 되지만 저는 제일 열심히 해도 맨 뒤에서 1등이었으니 남들 처럼 놀 수도 잠을 다 잘 수도 없었습니다.
   공부란 시작이 중요 합니다. 반년이 지나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토익 시험을 통과 하지 못한 학생들도 있지만 그래도 우수한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된것도 좋은 교수님들이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였구요.
   주말에 하던 동주민센터 컴퓨터 강의도 반년이 지나서 부터 그만두고 그 대신 모자라는 돈을 벌기 시작하였으니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셈이 아니겠습니까?
   조금씩 경험이 대학 공부에 도움이 되기 시작 할 때 가 오더군요. 2학년부터는 훨씬 나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학점도 C에서 B마이너, B 뿔 에서 A 까지 점차 적으로 올라가고 장학금도 받으니 공부가 즐겁다는 말이 어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제일 어려 웠던 것이 항상 돈, 돈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대학에서 도서실에 갔다가 늦게 집에 돌아 오느라고 전철에서 카드 찍었는데 아! 잔액 부족이네요.
   밤 11시에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택시를 타면 아까운 돈이 엄천 빠질걸 생각하니 앞이 캄캄 하더군요.
   체크 카드를 찍어 보니 무엇이 그리 많이 빠졌는지 남은 돈도 얼마 없더군요.
   집에서 초등생 딸애는 기다릴텐데 집에 안가자니 내일 또 카드에 돈은 넣어야 하겠고, 할 수 없이 걷기 시작 하였습니다.
    떠날 때는 추웠었는데 걷다 보니 점점 더워 단추를 다 끄르고 버스길 따라 걷고 또 걷는데 다행히 길에는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불이 환하여 무섭지 않게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 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한번 도시에 나가자면 150 리 길을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걸어 나가야 기차를 타고 고향에도 친척집에도 가야 하니 점심을 길가에서 먹고 물통 두개만 있으면 100리~200리도 갔던것이 도움이 되더군요.
   ㅎㅎㅎ돈이 없으니 이런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돈에 대한 절약 정신이 강하게 여겨졌던 시기였던것 같습니다.
   돈 돈에 대한 잘못된 열망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기도 하더군요.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9
본문_작성자  2013.02.27 18:02  
제가 옆에 있었으면, 차비 정도는 내드렸을텐데.... 하 하 하
본문_작성자  2013.02.27 22:21  
대단 하시다는 느낌 입니다. 꼭 성공 할것 같습니다.
본문_작성자  2013.02.28 12:46  
놀랍습니다. 존경합니다.^^
파도소리  2013.02.28 15:41  
힘내세요.글을 읽으니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본문_작성자  2013.03.16 08:18  
훌륭하십니다. 저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본문_작성자  2013.03.18 17:39  
대단하세요..... 응원할게요. 한국에서 더 좋은 일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본문_작성자  2013.03.22 01:09  
강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본문_작성자  2013.09.11 00:19  
대단 대단 하시네요...
동틀날  2013.11.05 18:39  
점점 힘이 생기네요. 산정상이 보이네요.. 어기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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