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있어다오 3.

살아만 있어다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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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모두 제대로 먹지 못해 누렇게 푸석 푸석 부은 얼굴로 장군님의 영도를 따라 강성대국을 함께 건설하자고 말을 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하도 기막혀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 한다. 들으면서 나도 기가 막혔다. 몰라도 그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북한땅을 벗어나기 전에 우리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물론 십여년전의 이야기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주민들의 인식에는 큰 변화는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재탈출을 결심하고 고향에서의 마지막 밤 바로 위에 언니와 대판 싸웠다고 한다.



- 나는 가다가 죽더라도 내 길을 찾아 갈테니 언니는 장군님을 모시고 강성대국을 건설해 라고...-


끝내는 언니(즉 나의 고향친구이다.)도 동생의 마음을 돌려 세울 수 없음을 알고 그렇게 하라고 하드란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 자매는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죽지 말고 살아있으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떠났는데 그 세월이 벌써 십년이 되었다고...


담담하게 A의 이야기를 듣는데 어느 순간 맺힌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냅킨을 가져다 이리저리 눈물을 조용히 찍어내는데 눈치 빠른 커피숍 사장님이 또 한 웅큼 냅킨을 가져다주신다.


그렇게 탈북하고 어렵게 남한행이 성사되었고 그 뒤 악착같이 돈을 벌어 고향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A가 남한에 온지 2년만에 나란히 가슴에 묻은 오빠의 뒤를 따라가셨다고 한다.


한국 와서 내가 보내준 돈으로 부모님이 쌀밥이라도 드시고 약이라도 조금 써보았으니 난 그거로도 만족해. 지금 생각해보니 북한에 잡혀 나갔던 것이마지막으로날 낳아주신 아버지,어머니얼굴 더 보라는 하나님의 뜻이었나봐. 내가 낳은 눈에 넣어도 안아픈 우리 아이들 울 부모님 한 번도 보진 못하셨지만 그래도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꺼라고 생각해. 언니 난 더 이상 울지 않을꺼야. 이젠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려서 나오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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