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친구야

사랑한다 친구야

댓글 : 18 조회 : 5353 추천 : 1 비추천 : 0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보니까 처음 보는 낯선 전화번호이다.보통은 낯선 번호는 거의 안받는 편이지만...
왠지 마음이 움직였다고나 할까?

"여보세요?"
수화기에 귀를 바짝 기울였다. 누군지 모를 상대방은 침묵만 지킨다. 이윽고...들리는 한 마디

"내다."
흠...
다짜고짜 전화해서 내다 라고 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특유의 직감으로 누구라는걸 대번에 알아차릴수 있었다.

"그래. @@이지? 별일 없고?"

지극히 평범한...일상의 안부를 주고 받는 식이다.그런데...잘 있다고 하면서...수화기 너머의 그녀는 꺽꺽 흐느끼고 있었다. 오후 세시경이였는데...이 환한 대낮에 그녀는 대체 어인 일로 흐느끼고 있는 걸까?

그녀와 나, 근 일년반만에 처음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한 안부를 묻고 답하며 지금 어디냐고 물으니 육지랜다. 하... 꺽 꺽 메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녀가 겪어 왔을, 부딪치며 하나하나 깨닫고 있을 피 튀기는 무한경쟁사회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의 처절한 삶의 고비고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듯이 흘러간다.

그래 그렇구나...

하나원퇴소당시 그녀는 집을 제주도로 받았었다. 그런데 일자리도 찾기 힘들고 해서 육지에 나와서 일한단다. 그래서 내가 시간되면 놀러 오랬더니... 힘겹게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말이 나중에 잘 살면 찾아간단다.

(이 친구덕분에 나는 새터민들중 제일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곳도 가보았었다. 2007년 당시 내가 만났던 인권위 조사관은 당시 입국한 1만 7천명 탈북자들 중 이렇게 인권위원회 문을 두드린 것은 내가 처음이라며 무척 놀라워했다. 그때 일을 계기로 나는 대한민국은 철저히 증거제일주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무슨 일이 부닥치면 가장 먼저 증거자료(서면자료, 녹음, 증인등등)를 확보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게 되었다. 파란만장한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었다고나 할까...증거가 없으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음을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잘살면...

그녀가 원하는 잘 사는게 어떤것인지 대충 알지만...가뜩이나 허리디스크에 시달리는 그녀가 잘살려고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치는 않음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드넓은 세상에 달랑 홀로 남겨진 그녀가 너무나 가슴아프지만... 이겨내야 한다고 나지막히 주문을 걸어본다.
렇게 십여분가까이 통화를 끝내고 내가 보낸 문자...

"난 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 너의 편이 되어 줄꺼야.
넌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할 권리 있다는거 잊지 마!! 기운내!!"


그렇다.
그녀만큼은 세상 그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었다. 유복녀로 태어나 아빠 얼굴도 모르는 그녀, 그녀의 아빠는 구소련에 벌목공으로 일하러 갔다가 사상적으로 문제시되는 발언을 했다고 하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발빠르게 그녀의 외가쪽에서 엄마와 아빠를 이혼시킨 덕분에 그녀와 그녀의 오빠, 그리고 엄마는 다행히 수용소로 끌려가는 참변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가도 따라다니는 정치범가족이라는 주홍글씨같은 낙인때문에 그녀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불행의 서막은 시작에 불과했었던 것이였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때문에 아빠가 그렇게 되었다면서 힘든 세상살이의 화풀이를 아무 죄도 없는 어린 그녀에게 늘쌍 하곤 했었다.

아니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게 왜 친구의 잘못이였단 말인가...

어린 마음에도 친구집에 놀러가면 친구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그토록 의아스러웠었다. 늘 구박만 받고,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내가 왜 사는 걸까? 그런 의문을 늘쌍 품고 다녔던 그녀...
하지만 그 의문은 십년만에 만난 친구가 말해주어서야 풀렸다. 친구는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아빠를 고스란히 빼닮았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보면 엄마는 아빠가 미치도록 떠올라서 더 미워했다고 한다. 세상에나...

십년만에 다시 만났던 나의 친구는 자신의가족들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북에 있는 오빠는 어찌어찌 장가를 갔다고 한다.

나에게도 조카가 생겼어...

친구는 서글픈 미소를 살며시 띄웠었다.

내가 하나밖에 없는 고모니까 돈 마니 벌어서 보내줄꺼야...

친구의 얼굴에 피어오르던 발그레한 연분홍 미소가 마치 어제런듯 생생히 떠오른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탈북했던 그녀의 엄마는 자다가 불시에 들이닥친 공안을 피해서 아파트 이층 창문을 뛰어 내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가 영 영 생사조차 모르는 형편이다.

"한족굴에 팔려가도 살아만 있어라.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체념한듯한 친구의 쓸쓸한 한 마디가 오랫동안 내 마음속을 맴돌았었다. 비록 친구가 자랄 때 그토록 구박하고 야단만 쳤었던 엄마였지만... 어릴 땐 정말 싫었고 미웠었지만...훌쩍 커버려서 세상을 둘러보니 본의아니게 가장이 되어 자식들을 홀로 키웠어야 했던, 여자로써의 엄마의 삶이 그렇게 모질고도 힘들었다는 걸 자기도 느꼈었다며... 돈 벌어서 엄마도 찾고, 오빠네 가족도 한국으로 데려오고, 이제껏 못 다한 효도도 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고 싶다며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말해주었었다.

정에 주렸던 탓이었을까?

사회생활을 몇 년동안 겪어 보면서 나름 깨닫고 난 후에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으라고 마음을 다해 해주었던 나의 진지한 충고를 친구는 가벼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모대기다가 결국 사랑을 선택했었고... 그렇게 내 곁을 조용히 떠나갔었지만... 새로 찾은 사랑과 불과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졌다는 소식을 나중에 인편을 통해서 듣고 마음이 아파옴을 숨길 수 없었었다.

상처가 너무도 커서였을까?
아님 진심어린 내 충고를 가볍게 무시한 자신에 대한 원망이 커서였을까?

전화번호도 바꿔 버리고 세상에 없는 듯이 숨어버린 너를 떠올리며 내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는지 모른다.

그래...힘들겠지...그치만, 그 모든게 어쩌면 네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어차피 넘어야 될 산이고 건너야 될 강일런지도 몰라...

그렇게 흙탕물, 가시덤불길을 헤치면서도 악착같이 살아 남아가지고 언젠가 꼭 다시 만날 그날 사랑하는 혈육들을 부둥켜안고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말해주어야 할, 평생을 다 바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으니까...

십년만에 꿈과 같이 다시 만났을 때 친구는 나를 보고 저으기 놀라워했다.
격이 완전 180도로 변해버렸단다.

내가? 저런? 내가 예전에 어쨌는데?

하고 물었더니 친구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있는듯 없는듯 그토록 얌전했댄다.

그래? 그랬었구나. 내가

그리고 내가 던진, 타향살이 십 여년이 함축되어있는 몇 마디...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내가 살아 남을려면 내가 변해야 겠더라..."

이 말을 듣고 친구는 이윽토록 말이 없었었다. 진심으로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다. 다정하게 손잡고 함께 포장마차에 앉아서 쓰디쓴 소주 한 잔 서로의 앞에 놓고 우리의 지나온 십대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깔깔 웃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글썽이고 싶다.

또한 북에서 태어나 남에서 살아가는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이런 저런 모습에 대해서,어른으로 살면 살수록 더욱 깊게 느껴지는 삶의 고뇌들, 모순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끝도 없는 의문들을 서로 묻고 답하며 진정한 삶의 정답을 찾아서 헤매이고 싶다.

러나... 지금은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녀 스스로 깨닫고 느끼고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잘 살면 찾아갈께!!

그 날이 과연 언제일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잘 살면 찾아온다는 친구의 반가운 전화가 언젠가 다시 울리기만을 학수고대 해보련다. 내가 보낸 문자에 삼십분쯤 있다가 날아온 친구의 답장

"고마워"

달랑 세 글자...

그러나 여백에 가득찬 서로에 대한 그리움만큼은, 미처 말로는 다하지 못한 절절한 마음의 대화만큼은 우리는 서로가 느낄 수 있었다.

- 2009년 8월 3일 -


P S : 보고싶은 친구 @@아. 잘 살고 있는거지...니 생일 7월 31일이 머지 않아 돌아오자나... 니가 많이 보고싶다. 너도 이 글을 보고 있을꺼라 생각해. 내 전화번호 그대로니까... 니 마음 내킬때 꼭 전화주길 바란다. 나 너 미워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거니까.... @@이도 장가가서 딸까지 낳았더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갔어.

그냥 떠밀리듯 흘러가는 세월속으로 미움도. 그리움도, 원망도 다 떠나보내는 것만이 남겨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드라구.... 나 많이 아프고... 그래서 니가 더 보고 싶어... 사랑한다. 하늘만큼....
우리 다시 만나서 남은 생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자꾸나!!!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18
아삭아삭  2015.05.06 16:42  
친구가 아플때 힘들때 눈물 닦아주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그런 인정많은 친구님 그런 님의 마음이 사랑스럽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친구에게도. 행복한 날. 올거예요
홍익인간  2015.05.08 08:02  
아삭아삭님 고맙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전 친구가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는 반드시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거든요...
본문_작성자  2015.05.13 10:07  
그친구는 정말 행복하네요.진정한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행복인지 몰라요. 언니의 그 진정한 우정이 너무 아름다워요~
홍익인간  2015.05.13 11:37  
음... 아직도 그 친구로부터 전화는 오지 않았어.... 하지만... 살아있다면 반드시 전화할꺼라고 생각해. 어디서 무엇을 하든...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본문_작성자  2015.05.24 12:37  
눈물이  납니다.  꼭  조은일만  잇길  진심으로  바래요.,..
홍익인간  2015.05.25 10:31  
고맙습니다.^^ 광야의 꽃님. 님도 꼭 행복하셔야 해요.^^
본문_작성자  2015.06.20 08:51  
홍익인간님 ! 사명감이침많은분이네요.어제밤 권시라는여자분 전화왓엇는데 뭐그리 대단한지 당연하다네요.돈요구 하는게 헌데님께서 쓴글이 없어졋네요
홍익인간  2015.06.20 22:40  
찐빵님 무슨 말씀이시죠? 쓰신 댓글중 앞뒤문맥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글이 없어졌다는 것은 뭔지요?
본문_작성자  2015.06.23 19:05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로 남아있는 님이 있는한 반드시 그친구분 님한데 연락오실거에요
홍익인간  2015.07.21 18:30  
고맙습니다. 새벽별1님 님도 귀한 몸 건강하시고 늘 행복한 삶과 마주하시길 바랄께요... 우리 험난한 길을 헤쳐온것만큼... 앞으로도 주눅들지 말고 사회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 잡도록 해요. 화이팅입니다.
본문_작성자  2015.07.17 15:46  
홍익인간 한 번 만나고 싶네요~
홍익인간  2015.07.21 18:31  
석양천사님 고맙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곧 만나게 될 꺼예요.^^ 여름 잘 이겨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본문_작성자  2015.07.18 18:37  
눈물이 핑도네요.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홍익인간  2015.07.21 18:32  
부초님 고맙습니다. 살아만 있는다면... 언젠가는 만나지 않을까.. 싶어요...
본문_작성자  2016.08.25 15:00  
감동입니다~~~늘 변함없이 친구와의 인연이 쭈~~~~욱 이어지시길..
홍익인간  2018.03.25 07:40  
이 글 친구가 못보았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요. 살아나 있는건지.... 마음이 참 아픕니다. 그래도.... 살아있으리라... 세상 어디선가는 살아있으리라.... 믿으며 기다려봅니다.
본문_작성자  2018.08.26 07:37  
댓글잘보고갑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홍익인간  2019.06.08 19:58  
감사합니다. 행복하셔요.^^
제목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