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대통령선거 첨도아닌데 허위?사실?
시간이 아니~~세월이 지나면 다 드러나는거 아시잔씁니까?
굳이 님이 주장하는 이*명이 나쁘다 또다른 사람들의 윤*열이 나쁘다고 쉼터에서 얘기할필욘없잖습니까?
회원들 모두가 각자의 가치관에따라서 대통령을 추천할진대 선거법을 아신다는분이 누가어떻다고 하십니까?
선거법에대한 글 올리지나않앗으면 몰라서 그랫을수도 잇겟다?하겟지만 이건?아이러니할수밖에요~~~
운영진에서 시사,정치란을 만들어 주시면 그안에서만 표현하면 되고 싫은시림은 시사,정치란에 안들어 오면 되는데
자유게시판과 통일 관련해서는 통일토론방 밖에는 갈때가 없으니
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야 할 자유게시판에 정치글이 올라오고,올릴수 밖에 없어 아쉬운점이 많이 있습니다.
어랑천님이 남의글에 온같 패악질 하시는 요점이 근거있는 글을 써라 라는거ㅣ주 이유인데ㆍ
자 님이 쓰신 글의 근거를 대주시죠ㆍ
이승만 정권하의 개인간의 좌우익의 쌍방 학살이다 라는것이 님이쓰신 글인데 좌익학살은 역사적으로 증명됬으니 우익이 학살당했다는 예는 무엇인가요?
근거를 대주시죠
자 일단 정리하께요 어휴.패악질? 또 패드립 시비트시지 마시구여.제발 좀 문맥파악하고 답질하세요.같은글 몇번 쓰게 만드시냐구여.멕시코님이 이승만정권이 학살한 민간인이이라고 이미지 블로그에서 갖고 왓는데요.머 신빙성 갖추느라 미국방부 기밀해제라고 까지 하면서요.그래서 국방부 기밀해제면 원문 갖고와라.아니면 선동이다고 시작한거에요.이글이라도 이해하고 시작 하죠.어휴 갑갑해미치긋네
역사적 사실의 근거가되는 그 사진들은 참 많아요ㆍ
멕시코님이 그 글에서 미군정보기관에서 나온 사진이다 라는 언급과 그 사진을 제출했어요ㆍ
님은 그 사진의 사실여부에는 관심없이 미정보국에서 나온것이 맞냐 아니냐 하시면서 패악질한것도 사실이고요. 설마 그정도는 패악질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시면 할말없고요ㆍ
자 그러면서 좌익 어쩌구ㆍ 서로 어쩌구 ㆍ하시면서 역사적 사실에대한 일베식 물타기를 님이 지금 시전 중 이시고요ㆍ
다시한번 묻습니다ㆍ
님이 주장하신 이승만 정권하에서 우익이 학살당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제주 43사건의 진실은 광주항쟁처럼 역사적으로 정의된겁니다ㆍ
이상한거 들고와서 논점 흐리지 마시고요ㆍ
이승만정권하에 수만명의 시민들이 좌익이 나쁘다는 매카시즘에 의해서 소위 학살이라는것을 당했어요ㆍ
님은 좌익과 우익이 정권의 묵인하에 서로 죽였다 라고 하셨고요ㆍ
일다 기초부터 봅시다ㆍ
좌익처럼 학살당한 우익의 사건을 하나만 근거를대보시오ㆍ
자꾸 헛소리하며 교묘하게 주제를 바꾸려 하지말고
수만명의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미명하에 이유없이 학살당했어요ㆍ
빨갱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개중에는 진짜 빨갱이도 있을테고 왜 죽었는지 모를 사람들도 있을거요ㆍ이 행위가 김일성이 저지른 수많은 무차별 숙청과 무엇이 다른가요?
어찌보면 더 악랄하지 않나요?
자 이승만 이 묵인하에 저지른 우익이 당한 학살은 어떤것이 있나요? 근거를 대보시오
님은 일단 국어이해를 못하세요.이승만이의묵인?하에 잇엇다고 질타 할순 잇어도 정권의 의한 학살이 아니다.이글 가지고 징글징글하게 걸리적 거리시는데 자.똑바로 들으세요 묵인?이라고 쓴건 님같이 빡빡 우겨대는 사람들이 잇으니까 그럴수도 잇겟다 쓴거구요 우익막살은 또 머임? 김일성이 국민 삼백만 죽인거는 좌익정권에 의한 학살이지.아닌가? 머가 불편해서 태클거시나여
어랑천씨 님은 자꾸 사실을 왜곡하거나 교묘하게 도망가는데ᆢ
공부시켜줄테니 잘듣고 공부하세요ㆍ
광주항생 여순사건 제주43
모두 민주화항쟁이 아닙니다ㆍ
그렇다고 한적없으니 말꼬리잡거나 왜곡하지마세요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공원력에 의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을 반성하고 바로잡고자 하는것이 제일 첫번째 이유입니다ㆍ
수만 ㆍ수십만명이 이유도 모른채 빨갱이 처단이라는 미영하에 공원력에 의해 학살을 당했어요ㆍ
물론 어랑천씨 주장은 이승만 정권이 직접한것은 아니고 묵인하에 한것이니 정권욕하지마라 라는 주장의 옳고 그름은 논외로하고
이런 역사적 사실을을 우리가 공부하고 기억하는 이유는 다시는 공권력에의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같은 비극을 격지말자 일것입니다ㆍ
님도 저랑 대화할 가치를 못느끼고 저도 님과 대화할 가치를 못느끼고
밤도 늦었으니 그만합시다ㆍ
마지막으로 내일 시간되면 이승만 정권하에 학살된 우익에대한 근거는 남기고 끝냅시다 ㆍ
본인이 주장한 이야기 수십번을 물어도 대답하지않고 딴소리만 주구장창 해대니 피곤해서 못살겠소ㆍ
6·25전쟁 발발 핵심 원인 중 하나는 ‘남한 내 좌익세력’[6.25전쟁 70주년] 김재동 목사의 잊지 말아야 할 그때 그 역사 <10>
입력 2020-05-22 00:06 수정 2020-05-2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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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인민군 포로들이 국군 헌병의 감시 아래 함경남도 함흥 지역 우물 속에서 민간인 시신 65구를 수습하고 있다.
사람들은 6·25전쟁을 북한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아 남침한 전쟁이며 국군과 유엔군은 불법 남침한 북한군과 이를 지원한 중공군을 물리친 전쟁으로 알고 있다. 이런 시각은 6·25전쟁을 일으킨 핵심적 주체세력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남한 내 좌익세력이다.
6·25전쟁은 북한군이 남한 좌익세력과 합세한 전쟁이었다. 남한 내 좌익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전쟁이 일어났다 해도 그토록 참혹하지 않았을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전면적 남침을 시작한 다음 날인 26일 김일성은 방송 연설을 통해 남한의 좌익세력과 빨치산에게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는 지령을 하달했다. 6·25전쟁 당시 12만명(확인되지 않은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최대 100만명 추정)에 달하는 남한 내 민간인 학살은 인민군에 의해 이뤄진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남한 내 좌익들에 의해 자행됐다.
좌익들은 완장을 차고 가가호호 가택수색을 하고 공무원, 군, 경찰, 학자 등 소위 인텔리 계층을 체포해 인민재판에 회부해 처형했다.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경우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경찰과 군인, 그 가족들을 체포해 그 자리에서 인민재판에 회부했다. 체포를 거부하면 즉결 처형을 했다.
인민군은 공무원, 군, 경찰, 학자 등 인텔리 계층을 최우선 대상으로 학살했다.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학살했고 반동분자로 낙인찍히면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먼 친척까지 몰살당했다. 이 같은 양민학살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민군 남침 초반에는 계획적, 조직적, 선별적 학살이었지만,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과 좌익들은 무차별 대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9·28 서울수복 이후 전세가 역전되면서 인민군과 좌익들은 후퇴하는 과정에서 체포·수감하고 있던 우익들을 대전교도소, 전주교도소 등에서 집단 처형하고 북으로도 끌고 갔다.
북한 공산군은 퇴각하면서 함흥 반룡산 동굴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주민들을 학살했다.
인민군은 퇴각하면서 도 시 군별 또는 읍 면 단위로 인원수를 할당했다. 좌익은 주민들을 무수히 학살했는데, 집행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귀 코 눈 등 신체 일부를 증거로 가져오게까지 했다.
대전에서는 1000여명의 애국인사들을 학살할 때 끓는 물을 사용하는 등 천인공노할 끔찍한 수법을 썼다. 10월 2일 대전형무소를 직접 취재한 종군기자 류붕렬씨의 증언이다.
“정말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져 있더군요. 어린아이까지도 총알이 아깝다고 구덩이를 파서 돌로 찍어 죽인 후 아무렇게나 묻어버렸어요. 두 개의 우물에는 사람을 단무지 식으로 생매장해서 죽였고요. 공산당들은 사람을 우물 속에 한 겹 쳐넣고는 카바이드로 덮어버리고 또 처넣고 하는 차곡차곡 단무지 담는 식으로 생매장을 했어요. 시체를 끌어내다가 ‘사람 살려’라는 가냘픈 소리가 들려 들춰보니까 13세 난 남자아이인데 우물 속에 쳐넣은 300여구의 시체 중에서 살아난 단 한 사람이었지요.”
좌익 인사들이 염산교회 성도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돌.
전남 영광군 백수면에 살았던 장맹룡씨는 6·25전쟁 당시 좌익들에 의해 6촌 이내 친척 30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영광군 염산교회 교인 77명은 좌익들에 의해 바다에 수장됐다. 염산교회 김방호 목사는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죽창과 몽둥이로 살해당하고 나머지 가족들도 그 자리에서 학살당했다. 염산교회 옆 마을에 있는 야월교회에서도 집단학살이 일어났는데, 전 교인 65명이 모두 학살당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설립자였던 고 김준곤 목사는 1950년 10월 3일 고향 전남 신안군 지도면에서 좌익에 의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내가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슬픔과 고통을 겪었다. 자신도 죽도록 매를 맞았고 21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원산 함흥 평양지역에서 학살은 더욱 잔인했다. 당시 함흥교화소에서 학살당한 양민들의 시신발굴에 참여했던 김인호 선생의 증언이다.
“함흥교화소에서 일어난 학살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다. 곳곳에 잘려나간 팔다리가 즐비했고 100여개가 넘는 방들에는 모두 시체가 쌓여 있었다. 화장실 안에도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오물통 안에도 도끼에 머리가 찍혀 두개골이 파손된 시체들이 오물 속에 처박혀 있었다. 이런 잔학한 만행을 북한군은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했다. 일본군도 이렇게 잔인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같은 민족끼리 더 잔인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치가 떨렸다.”
6·25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전쟁의 주범인 김일성 공산집단이 자행한 만행이 얼마나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최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김재동 목사
▶영성 가득한 공간 미션라이프 유튜브▶미션라이프 페이스북 팔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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