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새우깡은 최근꺼 같은데요...저도 못먹어봤죠! 북한 과자들은 최소 2월16일 4월15일엔 먹어봤잔아요.ㅎ ..80년대 선물과자가 나름 퀄리티 있었고 맛도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질이 떨어졌죠 선물은 지방마다 틀렸다고 하더라고요! ..각지방 공장들에서 생산해서...제동네는 나중에 벽돌소금과자를 선물로 주던데...
꼬부랑국수... ㅋㅋㅋ 정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1980년대 초 일본 총련을 통해 꼬부랑국수공장, 맛내기 (미원) 공장들을 들여 와
평양시 주민들에게 공급했었지요. 처음엔 포장도 했었고 스프도 함께 있었는데 조금 지나서 부터
스프와 포장없이 그냥 공급했던것으로 기억나고 얼마 후엔 공급이 중단 되더라구요.
중앙당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계속 공급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맛내기도 꽤나 인기 있었지요.
그런데 지방에 가지고 가면 맛 내기 보다 강냉이 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 하던 당시 지인들의 모습들도 늘 기억 됩니다.
그 시절 맛내기 나오기전엔 일본에서 귀국한 귀국자들이 귀국할 때 가지고 온 아지노모토(맛내기)를 그들에게 전해듣고 모두 아지노모토라고 했고 맛내기가 나온 후에도 보통 아지노모토라고 한것으로 기억 됩니다.
맛내기에 대한 여러가지 웃기는 일들 말씀 하셨는데 저도 100퍼센트 공감입니다.
1990년대 초부터 일어난 고난의 행군 이전 1980년대 중간~말 부터 지방에는 보름 또는 한달 정도로 배급이 끊기는 현상이 일어 났었습니다.
그 당시 사용되던 "량권"을 가지고 지방 출장길에 오르면 여관이나 식당에서는 백미는 없다고 해서 노란 옥수수 밥 을 먹었었습니다.
지방 식당들의 탁자에는 "거북이 식당"이라고 칼로 후벼 씌여진 낙서들도 흔히 볼수 있었는데요 모두 웃음짓게 하는 아련한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그 당시 한국의 실정도 별반 좋은 상태는 아니 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제가 살고 있는 외국에서 시민권 취득 후 처움으로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고 정부 기관의 안내로 삼성, 현대, 포철 등 대 기업들과 민속촌을 비롯 여러 지역을 관광한적이 있었는데 삼성기업에 들렀을 때 여공들에게 한달 생활비로 얼마 받느냐 물었더니 30만원 이라 대답했었습니다.
그후부터 비약적으로 발전 하더라구요 지금은 뭐 선진국들의 후생 시설을 앞서고 있다고 생각 됩니다.
염려의 댓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작업하실 때나 생활하실 때나 늘 조심하시여 다치는 일 없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