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동원 다들 가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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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동원 다들 가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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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모내기 사진이 있더라고요.
보면서 든 생각, 실은 문득이 아니고 탈북해서부터 쭉 했던 생각인데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때 흉년이 든 이유가 가뭄에 장마에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저는 북한에서부터 생각했던 것이 있는데요.

우리 어릴 때 농촌동원 다들 가보셨잖아요?

중3 때 부터 가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배고파서 엄청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배고파서인지 항상 작업을 대충대충 했는데 그때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대충 심으면 나중에 이게 제대로 자랄까? 이런 느낌이었네요.

잘 심지 못해서 농촌 작업반장이 다시 심게 한 경우가 되게 많았지만 어떨 적엔 그냥 대충 넘어갈 때도 많았죠.

중3이면 13~14살인데 하면 얼마나 제대로 할까요?

가을 농촌 동원 수확가면 듬성듬성 강냉이 밭이 많잖아요?

잘 여물지 않은 강냉이들도 엄청 많고...

북한의 이런 아동 착취도  농사가 잘안되는 원인중 하나라고 생각해 보는데 여러분은 농촌동원 나가서 잘했나요?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20
고향은북쪽 2022.10.08 23:52  
와 예리한 분석가시네요.
그말도 일리가 있으십니다.
재밋고 예리한 분석 덕분에 활짝 웃고가요.~^^
내로남불킬러 2022.10.09 00:35  
웃기는 얘기를 하자면 가을 농촌동원을 갔을 때 농장 밭은 쑥대밭이 된 경우는 있어도 개인 밭은 정말 풍성했답니다.

그런 걸 보면서도 생각하게 되죠 역시 개인이 정성 들여 가꾸면 가뭄도 피해 가고 장마도 피해 가는구나 싶더군요!

학생들이 농사를 했을 때 어른들과 비교하면 10~20프로의 유실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네요.ㅎㅎ

그러면 전국적으로 얼마만큼의 손해가 생길까요?

북한의 농장들을 석 개울의 새봄 이전처럼 개인에게 나눠주면 지금보단 20~30프로 이상의 수확을 더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ㅎㅎ
호랑천 2022.10.09 08:11  
물바께쯔 들고 언덕으로 들고가서강냉이모에 물주던기억이나네요
가다보면 철렁철렁 다쏟히고절반만 남은거 쬐끔씩 주던기억 ㅠㅠ ㅋㅋ  허기진배 채우느라 강냉이닦은거 뿌드득  씹어먹고 ㅋ지금은 임플란트  ㅋ
내로남불킬러 2022.10.09 11:08  
ㅎㅎㅎ네 맞습니다 저도 농촌동원 기간 중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물바께쯔 들고 물 나르는 거였습니다. 한 포기에 물이 들어가는 양이 주체농법인가 뭔가로 정해져 있지만 작업량은 완수해야 하고 길어온 물은 얼마 없으니 눈치 보며 포기에 물 조금씩 주거나 어떤 포기는 아예 건너뛰면서 농사를 지었죠.

밥시간 전에 작업을 완수해야 했기에 호미와 손을 함께 쓰며 영양 단지가 들어갈 구멍도 팠는데.. 그놈의 구멍도 국규가 있죠.
근데 어린 나이에 국규따윈 개나 저버려 였답니다. ㅎㅎ대충 하곤 단지를 심는 게 아니라 덮는 정도?
그 외 퇴비 비료 이런 것도 넣어야 되는데 넣은 것보단 안 넣은 게 더 많았어요
ㅎㅎ
며칠 후면 새싹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오면 작업반장이 화를 내며 다시 심으라고 했어요.

그렇게 다시 심어도 며칠 후에 새싹이 안 나는 포기가 수두룩했답니다.

반장도 애써 무시하더라고요. 그 기억에 제가 이 글을 썼는데....

딱딱한 강냉이 콩도 가을이야 가능했고, 봄엔 손가락만 빨아.. 도망친 애들 꽤 있었음요ㅎ
유수 2022.10.09 08:44  
듣고 보니 그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1960년대 중학교 1학년때에  가을 추수작업으로 2주동안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13세 정도였는데  뼈가 굳지 않을 때 여서 그런지 벼 베기 작업이 무척 힘 들었고
돌아와서는 어머니에게 안겨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여러 번 농촌지원에 동원 되였었는데 쉽지 않은 하루 하루 였다고 기억 됩니다.
내로남불킬러 2022.10.09 11:19  
맞습니다. 소중한 추억이지만 당시엔 도망칠 만큼 힘든 하루하루였습니다.ㅠㅠ
호랑천 2022.10.09 11:19  
내로남불킬러님 글을읽으니 옛날생각이나서 눈물이 나네요
딱딱한  강냉이도 귀했습니다.
지금 자라는애들은 사람 먹을거
내로남불킬러 2022.10.09 11:27  
딱딱한 강냉이도  귀했죠.
가을에도 함부로 먹을 순 없었고 항상 조건이 있었죠 예를 들어 임무?(작업)를 몇 시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그렇게 선심으로 강냉이던 콩닥이를 시켜도 실컷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생각한 건 아니 이왕 해주는 거 조금 더 해주지 이런 생각이었죠. ㅋㅋ

가을인데 강냉이나 콩 한번 실컷 먹기 힘들구나라고.!

그때 애들 배고파서 강냉이 한두 이삭이 나 콩 한 움큼씩 배에 감추거나 몸 안 어디에 넣어서 들어가는데 일이 끝나면 검사도 했죠!

그때 들키면 개망신.. 그리고 그날 밤 집으로 슛! 도망간 애들 있었죠ㅎㅎ
호랑천 2022.10.09 11:19  
못된다고하지만요 그때는 그것도 없어서 못먹었음을 ㅠㅠ
관리자 2022.10.09 14:56  
학교시절 농촌동원 나가 고생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공감백배입니다~~
내로남불킬러 2022.10.09 14:58  
맞어요  관리자님! ㅎㅎ 손모 하냐고 물었을때 공감하실줄 알았습니다!하하 자주 오셔서  좋은글 올려주세용!!

Congratulation! You win the 67 Lucky Point!

고향나루 2022.10.09 16:21  
Congratulation! You win the 67 Lucky Point! 그런데 이건 뭔가요?
내로남불킬러 2022.10.09 17:06  
축하합니다 당신은 렄키 포인트 67을 획특 하셨습니다! ...67포인트면 앞으로 33포인트면  빵을 바꿀수 있습니당..ㅎㅎ..는 아니고~~ ...댓글, 계시글로 인한 ....진급 포인트인것 같네요~~....고향나루님은 중위인가요? ..전  머죠:?ㅎㅎ
뚱보친구 2022.10.09 20:18  
내로 남분킬러님은  소위  혹은  상위겠어요  ㅎㅎ
내로남불킬러 2022.10.09 20:56  
네?ㅎㅎ한국계급을 모르긴 하는데 ..별이 아니고 줄은 상사나 하사 머 그런거 아닌가요? 소위부터 별아닌가요?ㅎㅎ.
뚱보친구 2022.10.12 14:08  
고향 나루님이  중위라고  하시기에  함께  농담  한마디  해봤어요  ㅎㅎ
보고싶은 2022.10.11 04:19  
제고향은  감자고장이라  모내기는  티비로만봣지  벼밭을  직접 보지도못햇고  경험도  못해봣습니다.
아~~참
한국으로오는길 중국서  시퍼런  벼밭은  차창너머로만  봣습니다.

저는  밭에  물주기는  없엇는데  제 경험으론  농촌동원보다도  겨울이  제 고향의 학생들에겐  최악이  아닐가  싶습니다.

랑강도  백암군  연암읍이엿는데  겨울에는  량강도  도  스케이트  경기를  연암에서햇는데  강이  얼기 시작하면  스케이트장을  만든다고  학생들  동원해서  겨울에  바께쯔로  넘 깊어서  강 바닥도  보이지않고  물살이  겁나게  쎄서  바께츠도  떠내려갈정도  물살의  강물을  한번 한번  한사람  한사람씩  선생이  받아서  번갈아  부어가면서  평평해지도록  물을  부엇어요.

영하  30도이내라  바지가랭이가  꽁꽁얼고  꽁꽁  얼어든  바지가랭이는  따가락~~따가락  소리가나고~~장갑은  얼음튀김이되고  손은  얼어서  새빨갛게~~감각이  없고~~

덜덜 떨면서  집에가면  엄마는  안쓰럽다고  바지랑  동복  장갑을  재빨리벗기고  찬물에  손담가주시던~~흑 흑

중학교때  스케이트장을  만들던  얘기를 하다가  엄마얘기  나오니  눈물납니다.

저의  엄마 36년생이신데  생존이시거등요.

돌아가셔도  술한잔  대접못해드리니  넘~~넘 목이메고  한스럽습니다.

어휴~~농촌동원얘기하다가  갑자기 ~~
엄마얘기하고  잇습니다.

넘~~넘  보고싶고  돌아가시기전  제대로된 따뜻한  밥한끼  대접해드리고  싶은게  소원입니다.
유수 2022.10.12 19:54  
백암군에서 오셨군요  1980년대 중반 제가 근무하던 회사 ? ( 북한말로 직장)의 강당을 지었는데 바닥을 나무 마루로 깐다고 하며 량강도에 가서 나무를 구입해 오라는 지시를 받고 혜산을 거쳐 연사군, 백암군, 운흥군으로 출장 다녀 온 일이 있습니다.
백암이 고향인 친구덕에 강당에 깔 마루양의 전체를 그쪽 림업사업소와 계약 끝내고 마침 3대혁명소조로 운흥광산에서 일 하는 형님을 만나기 위해 운흥을 거쳐 돌아 왔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형님에게 늘 죄스럽고 미안하기 끝이 없는 마음입니다.
백암 그쪽엔 말씀처럼 정말 논이 없더라구요.... 하도 내륙 갚은 곳이라 6.25 전쟁 당시 미군과 국군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고도 합니다,
보고싶은 님의 어머님  늘 건강하시여 두분 꼭 다시 만나 뵙기 진정 바랍니다.
ghpm 2022.10.13 11:20  
손 시리고 물 묻은 실장갑이 얼어서  꽛꽛해지고 12살 나이에 바께쯔에  물을 길어서 학교운동장의 그 넓은 면적에 눈판을 만들고 물을 힘겹게 부으면 바로 바로 얼던 그 혹한기.
생각만 해도 냉혹한 겨울이였죠.
 하지만 며칠후 바로 설날 5일전부터 겨울방학 들어가면서 해마다 공수고였죠.
얼음판을 만들면 바로 하루동안에는 체육쌤만 신났드랬죠.
혼자 스케이트 타며 잘 놀드구만~ ㅎㅎ
내로남불킬러 2022.10.11 11:56  
고생 하셧네요.! 저희가 사는 동네에서도 강을 막아 스케이트 장을 건설했습니다.스케이트 장 건설도 힘들었던 기억 있습니다. 방과후에 교실뒤에 놓아둔 삽이랑 곡괭이를 들고 둑을 만들러 나갔네요.ㅎㅎ그래도  농촌동원 처럼 긴시간 노동이 아니라서 다행이면 다행이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갈수 있다는것도 좋았던것 같습니다.

농촌동원은 일이 끝나면  농장원의 집에서 2명 또는 3명이서 잠을 자야  하는데  북한 농촌집들 허접한 집들이 꽤 많았죠.

사람좋은 집에 들어가면 가끔 식사도 같이 하고 그랬지만 거의 그런집 보기가 힘들었죠..

조용히 하라고 꽥 하는 집도 있었고 한번은 딱 두명이 사는 신혼 집에 묵은적도 있었는데 신혼부부가 얼마나 금술이 좋았는지........그때 밤마다 잠을 못잤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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