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순수한 인식 - 인간의 고뇌가 사라질 때
자연의 아름다움이 일단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면 거의 언제나 우리는 아무리 짧은 사이라도 주관성이나 의지의 고역으로부터 순수한 인식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격정, 또는 고난이나 근심 등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도 오직 자유로운 심정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기운이 나고, 명랑해지고, 위안을 얻게 된다.
그래서 격정의 폭풍, 소원과 공포의 충동, 의욕의 모든 고뇌는 이상하게도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린다. 왜냐하면 의욕을떠나 의지가 없는 순수한 인식에 몰입한 순간, 우리는 별세계에 들어간 셈이며, 거기에는 이미 우리의 의지를 움직여서 격하게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식이 자유롭게 되면 우리는 마치 잠과 꿈에 의해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떠나 버리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에서벗어나게 된다. 행복과 불평은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이미 개체가 아니며, 개체는 잊혀지고, 오직 순수한 인식 주관일 뿐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세계에서 눈으로서 존재할 뿐인데, 이것은 인식의 힘을 갖고 있는 모든 생물에 작용하고 있지만, 오직 인간에게는 의지의 역할을 완전히 탈피할 수 있고, 그 때문에 개별성의 차별이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보는 눈이 강대한 왕의 눈이든 불쌍한 거지의 눈이든 별로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행복도 고뇌도 모두 이러한 한계를 넘은 경지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고뇌를 완전히 이탈한 경지는 언제나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누가 이 경지에 오래 머무를 힘을 갖고 있는가? 이처럼 순수하게 관조된 객관과 우리의 의지나 인격과 어떠한 관계가 다시 인식되자마자 마법은 곧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이유율이 지배하는 인식으로 다시 떨어져서 이미 이데아를 인식하지 않고 개체, 즉 우리도 속해 있는 연쇄의 일부를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모든 고뇌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개의 인간에게는 객관성, 즉 천재성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언제나 이러한 상태에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